이만나 개인전 《세계의 모퉁이》, 선화랑 제2전시실 2025.12.31일까지
보이지 않던 풍경의 끝에서 시작되는 회화적 사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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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화 작가 이만나(Manna Lee, 1971~)가 서울 인사동 선화랑 제2전시실에서 개인전 《세계의 모퉁이(The Corner of the World)》를 연다. 전시는 12월 3일부터 31일까지 진행되며, 회화와 드로잉 작품 18여 점이 공개된다.

이번 전시는 2022년 《더 이상 거기에 없는 풍경》 이후 3년 만에 선보이는 개인전으로, 작가의 주요 연작과 더불어 최근 작업한 신작들이 함께 소개된다. 〈깊이 없는 풍경〉 연작을 비롯해 〈벽 앞의 풍경〉, 〈모퉁이〉, 〈길가〉 등은 현실의 풍경을 출발점으로 삼되, 실제와는 어긋난 감각의 공간을 만들어낸다.
이만나의 회화는 익숙한 장면을 닮아 있으면서도 쉽게 규정되지 않는 분위기를 지닌다. 화면에 차곡차곡 쌓아 올린 색의 겹은 사물을 설명하기보다는 시간과 감정의 흔적을 드러내는 장치로 작동한다. 얇게 중첩된 색채는 표면 아래 숨은 기억과 정서를 불러내며, 회화적 깊이를 형성한다.
이전 작업에서 작가는 도시 개발과 재건축 과정 속에서 사라진 장소들을 응시해왔다. 급격한 변화의 속도 속에 잊혀진 골목과 담벼락, 그 안에 스며 있던 기억은 그의 작품에서 상실의 감각으로 남았다. 기록을 넘어 감정의 잔상을 포착하려는 시도는, 변화된 풍경 앞에서 느끼는 체념과 공감을 동시에 담아낸다.
이번 《세계의 모퉁이》에서는 시선의 방향이 달라진다. 작가는 중심에서 밀려난 공간, 무심히 지나치는 가장자리와 모퉁이에 주목한다. 그곳은 끝처럼 보이지만, 작가에게는 새로운 인식이 시작되는 지점이다. 세계가 닫히는 장소가 아니라, 오히려 열려 있는 틈으로서의 공간이다.
작품 속에 자주 등장하는 벽과 좁은 골목, 깊이를 가늠하기 어려운 밤의 장면은 단순한 풍경이 아니라 존재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독일 유학 시절 체감한 언어와 문화의 거리감은 ‘벽’이라는 이미지로 형상화되었고, 이는 현실과 비현실 사이를 잇는 상징으로 기능한다. 관객은 그 벽 앞에서 멈춰 선 채, 화면이 만들어내는 긴장과 침묵을 마주하게 된다.
이만나의 작업은 자연과 도시, 물질과 비물질, 시간과 감정이 겹겹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형성된다. 그는 너무 익숙해져 더 이상 인식하지 못했던 풍경을 다시 바라보게 하며, 일상 속에 숨겨진 비일상의 순간을 환기한다. 관객이 잠시 멈춰 서서 자신만의 감각으로 세계를 다시 바라보기를 바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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